짧은 답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옳다면, 그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라고 말합니다. 요한일서는 그것을 다시 말합니다. 디모데전서는 하나님(﷾)을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런데 무리가 예수를 보았으며, 그의 제자들은 그를 만졌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본 이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자신이 그의 듣는 이들에게 그들이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그의 형상을 보지 못했다고 일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이 설명합니다. 그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의 대답은 꾸란의 대답입니다. 모세가 그의 주님을 보기를 청했을 때, 알라(﷾)께서는 그에게 그가 그럴 수 없다고 이르셨습니다.
자세한 설명
기독교인들이 기대는 구절들
기독교인들은 먼저 요한복음 14:9로 대답합니다. 거기서 예수는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빌립에게 그를 본 누구든 아버지를 보았다고 이릅니다. 그들은 또한 신약의 골로새서의 한 구절인 골로새서 1:15를 읽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보이게 되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성경이 하나님(﷾)을 보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
이제 성경 자체가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는 둘 다 어느 때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는 아무 사람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볼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청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라고 이르셨습니다. 이 구절들 가운데 어느 것도 그 규칙을 아버지로, 또는 예수 이전의 때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나타내셨느니라”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예수는 보였고, 들렸고, 만져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보였고, 들렸고, 만져졌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 편지는 그 저자들이 생명의 말씀을 “눈으로 본 바요”라고 말하며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는 그를 바라보고 있던 무리에게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라고 일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산인 시내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라고 상기시켰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여호와께서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 질문 |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하는 말 | 성경이 예수에 대해 하는 말 |
|---|---|---|
| 그를 본 사람이 있나요? |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요한복음 1:18). | 그렇습니다. 무리가 그를 보았습니다. |
| 누가 그를 볼 수 있나요? | 아닙니다. 그분은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디모데전서 6:16). | 그렇습니다. 그를 따른 이들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로 여기는 생명의 말씀을 “눈으로 본 바요”,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썼습니다(요한일서 1:1). |
사람들이 본 이가 하나님이었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본 것이니 요한복음 1:18이 틀립니다. 꾸란은 어떤 눈도 알라(﷾)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 질문에 두 가지로 대답합니다
출애굽기는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말합니다. 아홉 구절 뒤에 하나님(﷾)께서는 같은 모세에게 아무도 그분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없다고 이르십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아론, 아론의 두 아들, 그리고 칠십 장로(이스라엘의 지도자들)가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리고 먹고 마셨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어느 때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성경은 같은 질문에 예와 아니오를 말합니다. 꾸란은 하나의 대답을 줍니다. 아무도 이 세상에서 알라(﷾)를 보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나타내셨느니라”
꾸란이 말하는 것
모세가 그의 주님을 바라보기를 청했을 때, 알라(﷾)께서는 그에게 “네가 나를 직접 보지 못하리라”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분은 대신 산에 그분의 영광을 보이셨으며, 그것은 부서져 먼지가 되었습니다. 꾸란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은 없으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또한 알라(﷾)께서 오직 계시로, 가리개 뒤에서, 또는 사자를 통해서만 인간에게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꾸란은 심판의 날에 어떤 얼굴들이 “그들의 주님을 향하여 있고”라고 말합니다. 그 봄은 이 세상이 아니라 다음 삶에 속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그분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들 가운데 걸어 다닌 어떤 사람도 그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과 약속한 장소로 오니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이 있었노라 이때 그가 주여 제가 당신을 볼 수 있도록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소서 라고 말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직접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저 산을 보라 그것이 제자리에 남아 있으면 그때 네가 나를 보리라 그때 주님께서 그 산에 영광을 보 이시어 그것을 먼지처럼 만드니 모세가 기절하여 넘어지더라 그가 정신을 차려 일어나 말하길 당신께서 영광을 홀로 받으소서 저는 당신께 회개하며 제일먼저 믿는 사람이 되겠나이다”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은 없으나 그분에게는 모든 시각이 있으시니 그분은 자비와 아심으로 충만하심이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보낸 것은 인간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시를 통해서 또는 가리개 뒤에서 사자를 통하여 계시되었으며 이는 그분께서 뜻을 두고 허락하신 것이라 실로 그분은 높이 계시며 지혜로운 분이시라”
“그날 일부는 그들의 얼굴에 빛을 발산하며 그들의 주님을 향하여 있고”
구절마다 살펴보기
요한복음 14:9 — 14장 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인용 근거
예수는 그를 본 누구든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하므로, 예수를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답변
다음 구절이 그의 뜻을 줍니다. 그가 하는 말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며,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사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아버지는 그분이 예수를 통해 하시는 것으로 알려지십니다. 그분은 예수의 몸 안에서 보이지 않으십니다. 같은 복음서의 앞에서, 예수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 무리에게 그들이 결코 아버지의 형상을 보지 못했다고 이릅니다.
결론 — 눈으로 보는 것으로 읽으면, 요한복음 14:9는 같은 복음서의 요한복음 1:18과 5:37에 모순될 것입니다. 10절과 함께 읽으면, 그것은 아버지가 그분의 일을 통해 알려지신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18 — 1장 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나타내셨느니라”
인용 근거
그 구절 자체가 독생자가 아버지를 나타냈다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이신 아들로 알려지십니다.
답변
누군가를 나타낸다는 것은 모든 예언자가 했듯이 그를 알린다는 것입니다. 그 구절은 여전히 어느 때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들이 하나님(﷾)이고 무리가 그를 보았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구절의 앞 절반은 거짓입니다. 어떤 이른 사본들은 여기서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읽습니다. 그 읽기로도, 그 구절은 여전히 어느 때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무리는 예수를 보았습니다.
결론 — 어느 읽기를 받아들이든, 그 구절은 아무 사람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사람들은 예수를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6:46 — 6장 46절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인용 근거
요한은 아무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본 하나님은 그가 사람이 되기 전의 아들이었습니다.
답변
출애굽기 33장에서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그의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본 하나님(﷾)이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하시는 이를 아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같은 말씀하시는 이가 아홉 구절 뒤에 같은 모세에게 아무도 그분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없다고 이르십니다. 디모데전서는 또한 보이지 않는 이를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결론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버지에게만 옮기면, 아들이 그 자신에 대해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없다고 말하게 됩니다.
골로새서 1:15 — 1장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인용 근거
골로새서는 예수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곧 보이게 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답변
형상은 그것이 보여 주는 이가 아닙니다. 같은 구절은 그를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부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하며, 아무도 아담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론 —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는 것이 누구를 하나님으로 만들지 않으며, 그 구절 자체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의 형상과 다른 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1:18 — 1장 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나타내셨느니라”
인용 근거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보았습니다. 그의 신성은 보이지 않은 채로 남았으므로, 요한복음 1:18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답변
본성은 그 자체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위격이 그렇습니다. 신조들은 그리스도 안의 한 위격이 성자 하나님이시며, “두 위격으로 나뉘거나 갈라지지 않으시고”라고 말합니다. 그 위격이 보였다면, 하나님(﷾)이 보인 것이며 요한복음 1:18은 무너집니다. 오직 사람만이 보였다면, 제자들이 보고 만진 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 질문을 위격에서 본성으로 옮기는 것은 그것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신조로, 보인 이는 있는 유일한 「그」입니다.
관점
주류 기독교
아버지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십니다. 아들이 그분을 알리며, 예수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으로 보였습니다.
요한복음 1:18은 이어서 “독생자가 나타내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리는 것으로 읽습니다.
반박
누군가를 나타낸다는 것은 모든 예언자가 했듯이 그를 알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른 사본들은 여기서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읽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 구절은 어느 때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무리는 예수를 보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요한복음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을 읽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예수를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박
다음 구절이 그의 뜻을 줍니다. 그 말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며, 그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일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그분의 일로 알려집니다. 예수는 또한 그를 바라보던 무리에게 그들이 결코 아버지의 형상을 보지 못했다고 일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신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었을 때 보이게 되었다고 봅니다.
반박
신조들은 그리스도가 한 위격, 성자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 위격이 보였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본 것이며, 요한복음 1:18은 무너집니다. 그리고 형상은 그것이 보여 주는 이가 아닙니다. 창세기는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슬람의 관점
이 세상에서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무리에게 보였고, 들렸고, 만져졌으므로,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자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요한복음, 요한일서, 디모데전서는 모두 아무 사람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무도 그분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없다고 이르셨습니다.
요한일서의 저자들은 그들이 생명의 말씀을 보고 만졌다고 말하며,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예수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는 그의 듣는 이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결코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그의 형상을 보지 못했다고 일렀습니다.
제자들이 본 이가 하나님이었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본 것이며 요한복음 1:18은 거짓입니다. 오직 사람만이 보였다면, 그들이 본 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꾸란은 알라(﷾)께서 산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듯이, 그분은 이 세상에서 보일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