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아닙니다. 꾸란은 그의 원수들이 예수를 살해하지도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다고 말하므로, 어떤 저주도 그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모세의 율법은 나무에 달린 자를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라고 부릅니다. 1세기의 기독교 선교사 바울은 그 구절을 인용하며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셨다고 씁니다. 그러니 기독교의 이야기에서는 하나님(﷾) 자신의 율법이 그분의 메시아를 저주해야 합니다. 꾸란은 예수에게 정반대의 자리를 줍니다. 꾸란은 그가 현세와 내세에서 명예로운 자이며,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이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께로 올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에 반대했으며, 바울은 십자가를 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슬람의 대답은 그 저주가 기독교의 십자가 이야기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꾸란의 예수는 결코 그 아래 있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설명
모세의 율법이 하는 말
모세의 율법은 성경의 처음 다섯 권입니다. 그 가운데 신명기는 죽을 죄를 범하여 죽임을 당하고 나무에 달린 사람을 말합니다. 그의 시체는 당일에 장사해야 합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무죄했지만 율법의 저주를 자기 위에 졌다고 봅니다. 그들은 그가 다른 이들을 그것에서 놓아주려고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 자체의 말을 인용하며 갈라디아서에서 이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다른 첫 제자들은 예수를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한 이로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저희가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그 반론은 교회만큼 오래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리라 약속하신 왕인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 유대인에게 거리끼는 것이었다고 인정합니다. 2세기에 기독교 저술가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트리폰이라는 유대인과의 대화를 썼습니다. 트리폰의 반론은 이 율법에 근거합니다. 율법은 십자가에 달린 자를 저주받은 자라 부르는데, 메시아가 어떻게 그렇게 죽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이 2세기 기독교 저작에서 유대인 화자 트리폰은, 율법이 십자가에 달린 자를 저주받은 자라 하므로 그의 동족은 메시아가 그토록 수치스럽게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는지 의심한다고 말합니다.
무슬림 학자들도 같은 논증을 했습니다
이슬람을 연구하는 기독교 학자 크리스티네 시르마허는 무슬림 신학자들이 여기서 성경 자체로부터 논증한다고 보고합니다. 율법은 나무에 달린 사람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저주받은 범죄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을 리 없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녀는 또한 이슬람을 연구하는 또 다른 기독교 학자 헤르만 슈티글레커를 인용하는데, 그는 무슬림의 견해를 요약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천한 무리에게 조롱받고 학대받도록 스스로를 내버려 두셨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모욕이라고 그는 씁니다. 하나님(﷾)께서 두 범죄자 사이에서 범죄자의 죽음을 당하셨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슬람을 연구하는 기독교 학자인 저자는, 무슬림 신학자들이 신명기 21:23을 근거로 저주받은 범죄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예언자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리 없으며, 수치스러운 죽음은 예언자에게 합당치 않았을 것이라고 논증한다고 보고합니다.
이슬람을 연구하는 기독교 학자인 저자는 무슬림의 견해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천한 무리가 그분을 조롱하고 학대할 만큼 스스로를 낮추셨고, 두 진짜 범죄자 사이에서 범죄자로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모욕이라는 것입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꾸란이 예수에 대해 하는 말
꾸란은 예수가 현세와 내세에서 명예로운 자이며, 알라(﷾)께 가장 가까운 이들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꾸란은 또한 그의 원수들이 그를 살해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보이게 되었을 뿐이며, 알라(﷾)께서 그를 당신께로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예로운 사도가 당신 자신의 율법의 저주 아래 떨어지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에서 십자가 위의 사람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칩니다. 그러니 기독교의 기록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메시아를 버리십니다. 꾸란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께로 올리십니다.
“천사들이 말하길 마리아여 하나님께서 너에게 말씀으로 복음을 주시니 마리아의 아들로써 그의 이름은 메시아 예수이니라 그의 이름은 메시아 예수이며 그는 현세와 내세에서 명예로운 자라”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 라고 그들이 주 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 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하나님께서 그를 오르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구절마다 살펴보기
갈라디아서 3:13 —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인용 근거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다른 이들에게 속한 저주를 기꺼이 지신 것으로 읽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다른 이들을 그것에서 놓아주었다고 말합니다.
답변
바울은 자기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에게 내리는 저주를 기독교인들이 무죄하다고 부르는 사람에게 둡니다.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아비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습니다. 꾸란은 짐 진 자가 다른 사람의 짐을 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꾸란은 또한 하나님(﷾)께서 현세와 내세에서 예수를 존귀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결론 — 하나님(﷾) 자신의 판단에서 각 영혼은 자기 죄를 지며, 꾸란의 예수는 결코 그 저주 아래 있지 않았습니다.
관점
주류 기독교
예수는 무죄했지만, 십자가에서 기꺼이 죄인들 대신 저주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그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놓아주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씁니다. 그는 나무에 달린 사람에 관한 율법을 인용합니다.
반박
바울은 분명히 이렇게 쓰며, 율법을 인용합니다. 그러니 그는 죄인에게 내리는 저주를 기독교인들이 무죄하다고 부르는 사람에게 둡니다. 에스겔은 아들이 아비의 죄를 담당하지 않으며,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는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첫 제자들은 예수를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한 이로 말합니다.
반박
사도행전은 분명히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인” 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신명기에 있는 율법의 저주의 그림입니다. 그것은 저주를 걷어 내는 대신 그를 저주에 묶습니다. 꾸란은 그의 원수들이 그를 살해하지도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다고 말하므로, 그 저주는 결코 그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이슬람의 관점
예수는 현세와 내세에서 하나님(﷾)께 존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도가 당신 자신의 율법이 저주받은 것이라 부르는 죽음을 당하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원수들은 그를 살해하지도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께로 올리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나무에 달린 사람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 구절이 예수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은 바 되셨다고 말합니다.
꾸란은 예수를 현세와 내세에서 명예로운 자라고 부릅니다. 꾸란은 그를 알라(﷾)께 가장 가까운 이들 가운데 하나라고 부릅니다.
꾸란은 그들이 그를 살해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알라(﷾)께서 그를 당신께로 올리셨습니다.
저주받은 죽음은 존경받는 예언자에게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의 기록은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의 메시아와 맞세웁니다.
유대인들은 일찍부터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율법의 저주 아래 떨어진다고 반대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유스티누스의 트리폰은 바로 그 말로 반론을 제기합니다.
무슬림 신학자들은 신명기 21:23에서 존경받는 예언자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리 없다고 논증합니다.
이슬람을 연구하는 기독교 학자들은 그런 죽음에 대한 무슬림의 견해를 기록합니다. 두 범죄자 사이의 수치스러운 죽음은 하나님(﷾)께서 결코 겪지 않으실 모욕이라는 것입니다.